내가 취업 준비를 시작하고 가장 처음 지원서를 넣은 기업 3개는 모두 서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후 얼마 동안 ‘내 석사 과정이 남들이 보기엔 하잘 것 없었던 건가?’하는 회의로 약 2~3일 정도 스턴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그러나 돌아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내 포트폴리오, CV, 이력서에는 자기소개서(Cover Letter) 내용을 써 넣지 않았었으니까!
인사담당자의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내 지원서
지금 생각하면 신입이 패기도 이런 패기가 아닐 수 없다.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스펙을 가지고 개처럼 일하겠다고 빌지는 못할 망정(물론 빈다고 합격하는 것도 아니지만) 고고하게 ‘날 뽑아 줍쇼!’라고 배짱을 부린 터였다.
당시 행동에 대해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IT 업계에서는 실력이 전부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머신러닝과 관련한 연구를 했다면 그래도 면접에 한 번은 부르지 않을까’라는 아주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다시피 서류 3군데를 광탈하고 그럼 내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앞으로의 지원서에는 CV의 뒤쪽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지원했고 면접을 보자는 메일을 받기 시작했다. 진부하고 해야 하나 싶을 수 있지만 모든 걸 다 씹어 먹을 수 있는 스펙이 아니라면 ‘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아시겠지만 과거의 나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원했던 회사 중 대부분은 자유형식 자기소개서였기에 지원동기/장단점(또는 성장과정)/역량을 나타낼 수 있는 경험/입사 후 포부(구체적인게 존재한다면) 네 가지 질문을 바탕으로 내 나름의 이야기를 적었던 것 같다.
개발자 자유형식 자기소개서의 알파이자 오메가 - JD, JD, 그리고 JD
지난 번 intro 글에서 자격 요건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align되지 않은 곳에 지원서를 냈다가 시원하게 서류 탈락했다고 적었다. 그러면 내가 했던 행동과 반대로 화면 면접을 볼 확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서류를 제출하게 되면 합격했을 때 내가 일하게 될 실무자에게 거의 대부분 제출한 서류가 전달된다. 이 실무자분이 ‘이 지원자 면접을 한 번 보고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면접으로 진행이 되는 것이고 아니면 서류 탈락인 것이다. 즉, 우리는 이 실무자를 설득시켜야 하는 글을 적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관점에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각 항목에서 다음과 같은 테마를 가지고 내 경험이나 연구를 실무자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지원 동기 - 제가 이 공고에 나온 주요업무를 잘 할 수 있어요!
장단점 - 저는 이러이러한 점을 잘 할 수있고 이걸 뒷받침할 수 있는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역량을 나타낼 수 있는 경험 - 내가 해온 것 중에 학술적으로, 개발적으로 제일 자랑할 만 한 건 이거에요!
입사 후 포부 - 귀사의 제품, 서비스에서 이런이런걸 제가 머신러닝, 딥러닝으로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략적으로 이렇게 정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대명사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저 부분을 자기가 해온 것으로 대입하면 좋을 것 같다.
(회고하는 심정으로)지난 뒤 생각해보니 입사 후 포부는 안 쓰는 것만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너무나 전지적 연구자 시점에서 이 부분을 접근했다. 모 게임회사에서 나는 ‘강화학습으로 이 게임을 학습시킨다면 캐릭터 간의 밸런싱에 좀더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취지로 캐릭터끼리 강화학습을 진행하고 싶다는 내용을 적었다. 그리고 면접에서 면접관은 나에게 ‘그렇게 밸런스를 잡는다면 비즈니스적으로 어떤 이득을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해당 질문에 대해 면접 당시에는 나름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다. ‘맞춰진 밸런스로 사용자들에게 획일화된 조합이 아닌 나만의 조합을 찾을 수 있는 재미를 제공할 것이다.’라는 내용을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몇 가지 꼬리질문이 이어졌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학술계와 산업계의 관점 차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만난 취업을 준비하는 신입 석사(나 스스로를 포함하여)는 정말 몇 명 안되지만 저 academy와 industry의 차이가 있다는 것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포트폴리오는 대체 어떻게 쓰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이건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문제 정의, 사용 데이터셋, 해결 방법을 잘 드러나게 쓰라고 되어있는 공고를 여럿 봤지만 저걸 짧으면서 핵심만 요약하는 포트폴리오를 작성한다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이 글을 찾아온 여러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나는 ppt를 사용하여 포트폴리오를 작성했었다. overview, paper, project 등으로 섹션을 나눠서 작성을 했었는데 내 연구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전개해가는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게다가 나의 다른 블로그 글에서 알 수 있듯 내 연구는 ‘연구’로 실험을 시작한게 아니라 그냥 순수한 내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했기에 어디서부터 내 연구를 설명해야할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시간은 많지 않은데 나는 내 연구를 시작한 배경부터 설명하고 싶고… 이 딜레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지금까지도 어떻게 썼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 와서 이 포트폴리오를 고치라고 한다면 연구배경 같은건 싹 잘라먹고 problem definition부터 들어갈 것 같다. 또한 ppt로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것이 안좋은 것은 아닌데 ppt의 꾸미기 자유도를 내가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현재는 notion으로 이력서 페이지를 천천히 옮기고 있는 중이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잘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튜브 eo 채널에서 이력서에 관해 다루었던 적이 있다. 이제 주니어 레벨인 나는 새롭게 알았던 부분이 많았다. 해당 영상의 영상설명을 타고타고 가면 (영상 출연자이시기도 한) wonny님의 이력서 체크리스트도 이력서를 다 썼다면 한 번씩 봐서 손해 볼 것이 절대 없는 문서가 아닌가 싶다.
요즘 드는 또 다른 생각. 채용공고를 탐방하다 본 건데 ‘서류는 반드시 pdf 형식으로 제출해주세요.’라는 문구에는 이렇게 notion으로 이력서, 포트폴리오를 작성했을 경우에 어떻게 제출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된다. 물론 노션도 pdf로 내보내기를 할 수 있지만 링크나 토글이 이력서 원본에 의도한 바와는 달라지게 되니 누군가에게 물어볼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초짜 대학원생의 AI 직무 신입, 주니어 취업기 - 0
초짜 대학원생의 AI 직무 신입, 주니어 취업기 - 0.5 (전문연구요원)